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전개 (문단 편집) ==== 국회 점거·봉쇄 ==== 신민당의 계속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회 소집에 소극적이던 공화당의 태도 변화에 따라 1980.5.12.여야 총무는 계엄 해제 등 정치 현안을 다루기 위한 임시국회 소집에 합의하였고, 5.17. [[민관식]] 국회의장대리는 [[김용호(1920)|김용호]], [[이해원(1930)|이해원]], [[황낙주]](黃珞周) 의원 둥 의원 186명의 요구에 따라 5.20. 10:00 제104회 임시국회 소집을 공고하였다. 5.17. 20:00경 육본 지시에 따라 수도군단은 예하 33사단에 101연대 1대대를 100훈련단 작전 통제하에 국가 보안목표인 국회의사당, 한국방송공사에 투입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하달하였고,비상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됨에 따라 5.18. 00:20 1대대 2, 3중대에 한국방송공사와 국회의사당에 출동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어 01:45 33사단 101연대 1대대 3중대 소속 장교 3명, 사병95명은 연대 본부로부터 경장갑차 8대, 사단 전차중대로부터 전차 4대를 지원받아 국회의사당에 진주하였다. 5.18 03:15 계엄사로부터 모든 정치활동을 중지하고 정치 목적의 옥내외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의 계엄포고 제10호가 33사단에 접수되었고, 군병력의 국회 진입 소식을 듣고 나온 길기상 국회 사무차장에게 이상신 1대대장은 누구도 출입시키지 말라는 상부의명령이 있었다고 하였으나, 길기상 사무차장의 요청에 따라 민관식 국회의장대리와 국회 직원은 출입을 허용하였다. 5.20. 09:00경 5·17조치를 비난하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상도동 기자회견에 참석하였던 황낙주, 손주항 의원과 의원비서관, 보도진 등 3백여명이 10:15경 국회 정문에 도착, 국회의사당으로 들어가려 하자, 이상신 1대대장은 100훈련단을 통해 수도군단, 육본에 상황을 순차 보고한 다음 출입 통제지침에 따라 국회의원 등의 국회 출입을 저지하였고, 민관식 국회의장대리는 대대장의 요청을 받고 이들에게 해산을 종용하였으며, 그 무렵 국회 상황을 보고받은 수도군단은 9공수여단 병력을 국회에 추가 투입하려 하였으나 상황 종료로 취소하였고, 17:00경 박노영(朴魯營) 수도군단장은 육본으로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방문, 국회 상황에대하여 지휘 보고를 하였다. 이후 제104회 임시국회는 개회되지도 못한 채 6.18. 자동 폐회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